Project 2024
The Color of Memory
It’s been 15 years since I’ve lived in Amsterdam. I visit Korea for about seven weeks every summer. As soon as I arrive at the airport, my memories of Korea that I've experienced are very unfamiliar just like I'm experiencing someone else's time when I look through the window in the car while heading home. In the uncertainty of the reality, I try to keep reminding myself of those memories before the images disappear. Whenever I dive deep into the memories more and more that I experienced a long time ago, it leaves me uncertain if the images of memories that I’ve experienced are true to reality. It is more reliable to share space with someone than to share time. Time makes everything more difficult and complex. Since both time and space can be distorted easily depending on personal experience and historical context, we sometimes have questions and doubts about our memories. Taking this concept further, moving beyond the binary of remembering or not, we arrive at the broader spectrum of being conscious or unconscious. Also, when considering every stuff without my consciousness as unconscious stuff, the consciousness stuff in the unconscious stuff are very small beings.
Project “The Color of Memory” recalls Gilles Deleuze’s mention of “Bergson’s time schema,” and goes back from the dot (.) representing the present of every moment to oblivion and memory,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awareness and unawareness, and fact and distortion.
The ‘time schema’ mentioned by Gilles Deleuze, drawing from Henri Bergson, does not view time as a series of simple moments, but rather as a continuously changing and irregular flow experienced through our inner being. This concept of time, referred to as ‘pure duration’ or ‘inner time,’ explores how different moments interweave and interact within our experiences. Deleuze dives deep into this notion of time, explaining how it profoundly affects our perception of the world and our understanding of ourselves. Furthermore, he sees our memory not as merely reviving the past but as a process of reinterpreting the past through the present.They wander between the time of place, street, sky, mountain, trees, buildings, lights, sounds, scents, people, conversations exchanged, and the colors of the time. How perfect and trustworthy can an individual’s memory be, and how can a person can remind, speculate, and express the image of the memory? If someone expresses and shares their memories, those will be written in other text, and those official memories will manipulate and record my memory again.
Currently, cameras have replaced our eyes and they faithfully reproduce the appearance of reality which is obvious and objective. And we believe it. But even through such materialization, we remember, but at the same time, we become oblivious. By looking at the internal movement of the repetitive actions, in other words, the space-time created via dematerialization and I’ve tried to get out of the original format expressing the actual shape of the stuff. That is to say, I look at the essence instead of the outer surface and explore by focusing on the conflict between schematic lines and broken lines, the accent of geometric forms, and the difference between clear and unclear surfaces and colors.
<Review>
The “Colors of Memory” project took place between Amsterdam and Seoul over two years.
In the past 20 years, my work has focused on observing the situations and phenomena of encountering “society, a life of an extremely ordinary individual, and art” shake my own thought system. In my twenties and thirties, I recognized and questioned the absurdity of society (the outside world), prejudice, human rights, and community and expressed these themes mainly through performance, documentary, and animation. Now, as I pass the age of forty, I naturally feel the need to focus on the “individual” within “a single circle” (society - individual life - art) that I created. Starting from myself (inside), I focus on the moments I face among the elements of “a single circle.” For me, these three areas exist as one, categorized but not separable. Within this single circle, a thought is generated from a stimulus amid the movement of thought, which then becomes a concept.
What does art mean to me? Art has always reflected the times and contemporary society; artists have constantly tried using new technologies and tools to express those themes. I also use art to make others aware of the issues I discover in modern society. Whether the subject may be a critical social issue or a trivial personal story, art is about “discovering phenomena of the present.” For me, art should strive to change existing perceptions, experience an intriguing perspective on how art visually expresses beauty, and remind us of what we have been unaware of and express those phenomena.
My work process involves several steps; I decide on the object to observe, collect materials, refer to relevant books, interview the subject, and then write and draw. Choosing the resulting product (medium) comes next. For this project, I chose painting on canvas as the medium, which was perfect for expressing my observations on my personal life records and the questions I asked myself. When my thoughts were tangled with one another, when I fell into a bottomless pit and was shining a lamp in the dark, I referenced Gilles Deleuze (who has always been at the base of my work), Bergson, and Wassily Kandinsky’s research.
Looking at the 36 completed paintings, I realized that the invisible processes closely resemble the ordinary life of an individual. Painting was not a static product. I stood in front of the canvas with the purpose of painting, but the time of my actions performed on the canvas allowed me to experience the repeat of “now, present, and its time and space” that lost their purpose. The end (the result) is bound to arrive on a canvas, but what is important to me is the thinking, time, and space spent on it, and in the repetition, the end becomes a part that I simply end up facing. I hope to share this part with others and hope they can experience various fascinating “colors” (thoughts) based on their own “memories” (experiences).
Eunhyung Kim, June 2024
기억의 색
암스테르담에 거주한 지 15년이 되었다. 매년 여름 7주 정도 한국에 다녀오는데 공항에 도착해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밖을 바라보면, 지난 한국에서의 기억이 타인의 시간을 경험하는 것처럼 다가온다. 그 리얼리티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그 이미지들이 매몰되기 전에 기억을 지속적으로 떠올려본다. 그렇게 점점 아주 오래된 기억까지 도달하다 보면 내가 보았던 그 기억의 이미지들이 현실에 충실한 것인지 사실인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반복된다. 타인과 장소의 공유는 시간의 공유보다는 더 믿음직스럽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더 어렵고 뒤죽박죽 만들어 버린다. 시공간 모두 개인의 경험과 역사적 배경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에 우린 우리의 기억에 의문과 의심을 품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더 나아가 기억한다, 기억하지 못한다를 넘어서, 의식한다, 의식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나의 의식이 결여하고 있는 모든 사물이 무의식이라 볼 때 무의식의 존재들 속에서 의식적인 존재들은 아주 작은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프로젝트 ‘기억의 색’은 질 들뢰즈가 언급한 ‘베르그송의 시간 도식’을 떠올리며 매 순간의 현재인 점(.)에서 망각과 기억, 의식과 무의식, 자각과 무자각, 사실과 왜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질 들뢰즈가 언급한 앙리 베르그송의 ‘시간 도식’은 시간을 일련의 단순한 순간들로 보는 대신, 우리 내부 경험을 통해 느껴지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불규칙한 흐름으로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러한 시간을 ‘순수 지속’ 또는 ‘내적 시간’이라고 하며, 우리의 경험 속에서 서로 다른 순간들이 어떻게 얽히고 상호작용하는지를 탐구한다. 들뢰즈는 이러한 시간의 개념을 깊이 파고들어, 시간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우리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또한, 우리의 기억이 과거를 단순히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과거를 새롭게 해석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그때 그 장소, 그 거리, 그 하늘, 그 산과 나무들, 그 건물들, 그 불빛들, 그 소리, 그 냄새, 그 사람들, 그 오가던 말들, 그 시간의 색들을 의식과 무의식, 망각과 기억. 그 어느 사이를 표류한다. 인간 개인의 기억은 얼마큼 완벽하고 믿음직스럽고 그 기억의 이미지를 기억하고 사유하고 표현 해낼 수 있을까? 이 표현 되어진 개인의 기억이 공유되면 그 기억은 또 다른 타자로 쓰여지고 그 공적인 기억은 다시 나의 기억을 조작하여 기록할 것이다.
현재 우리의 눈을 카메라가 대신하면서 명백하고 객관적인 현실의 외관을 충실하게 재현 해내고 우린 그것을 믿는다. 그러나 그 물질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기억하지만 그만큼 얼마든지 또 망각한다. 그 반복되는 작용 속 내면의 움직임, 즉 비물질화를 통해 생겨난 시공간을 들여다보고 사실적인 사물의 형태를 표현하는 양식에서 벗어나, 다시 말해 외적인 표피가 아니라 그 본질을 들여다보고 도식적 선과 자유로운 파상선 사이의 갈등, 기하학적 형태의 악센트, 분명하면서도 불분명한 면과 색의 차이를 중심에 두고 탐구하였다.
<후기>
프로젝트 ‘기억의 색’은 암스테르담과 서울을 오가며 2년 동안 진행되었다. 나의 지난 20여 년간의 작업은 ‘사회-지극히 평범한 한 개인의 삶-미술’ 이 세 가지 영역을 오가며 마주하게 되는 정황들이 나 자신의 사유체계를 뒤흔들 때 그 현상들을 관찰하고 집중해왔다. 이삼십 대에 마주한 사회(외부)의 부조리함, 편견, 인권, 공동체에 대한 의문 등의 문제들을 인지하고 이 주제들은 주로 퍼포먼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과 같은 형식의 매체로 표현했다. 어느덧 나는 마흔의 나이를 지나며 내가 만든 ‘하나의 원 (사회-개인의 삶-미술)’에서 자연스럽게 ‘개인’에 집중하는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 자신(내부)에서 시작해 ‘하나의 원’ 사이에 마주하게 되는 순간을 집중한다. 내게 이 세 영역은 구분하지만 구분되지 않는 연결된 하나로 존재한다. 하나로 존재하는 이 원 안에서 생각의 움직임 가운데 자극이 되는 한 점을 통하여 생겨난 사유는 개념이 된다.
그렇다면 내게 미술은 무엇인가? 미술은 늘 시대와 현 사회를 반영해 왔다. 그 주제를 표현 해내는 매체 역시 새로운 기술, 도구의 사용 또한 미술가로 하여금 끊임없이 시도되어 왔다. 나 역시 현시대에 마주하게 되는 것들에 대해 미술을 통하여 타자로 하여금 그 주제를 환기 시키는 작업을 한다. 이때 미술의 주제가 현재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이든 아주 사소한 개인의 이야기이든 ‘현전하는 현상들을 발견하는 것’. 내게 미술은 기존에 있던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게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미술(美術)이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표현함에 있어 흥미로운 시각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또한 그로 인해 우리가 인지하지 못했던 부분은 상기시키고 그 현상들을 표현하는 것이다.
나의 작업 과정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응시의 대상을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그에 따른 서적을 참고하고 대상에 대한 인터뷰 등을 거쳐 글쓰기와 드로잉을 기반으로 한다. 그에 따른 결과물(매체)은 다음 선택이다. 이 프로젝트의 표현 매체로는 캔버스 위에 페인팅으로 선택하였다. 개인의 삶의 기록을 관찰하고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이 매체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의 생각이 엉켜 있을 때, 커다란 구덩이에 빠져 여기저기 불빛을 비춰보고 있을 때 하나의 드러나는 선이 되어주는 (늘 내 작업의 기반이 되어주는) 질 들뢰즈의 철학과 베르그송, 바실리 칸딘스키의 논문 자료를 참고하였다.
36점의 완성된 페인팅을 바라보며 결과물로는 보이지 않는 과정이 한 개인의 평범한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인팅은 멈추어 있는 결과물이 아니었다. 나는 그려내는 목적을 가지고 캔버스 앞에 섰으나 그 캔버스 위에서 행해졌던 나의 행위의 시간은, 매우 목적이 없어지는 ‘지금, 현재, 시공간’의 반복을 경험하게 하였다. 하나의 캔버스 위에 끝(결과물)은 오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이 위에서 행해졌던 사유와 시공간이며 그 반복 속에 그 끝은 내게 그저 맞이하게 되는 부분이 되는 것이다. 이 한 부분을 타자와 공유하며 그들 각자의 ‘기억’(경험)에 따른 다양하고 흥미로운 ‘색’(사유)를 경험하길 바란다.
김은형, 2024년 6월
Henk Slager
Professor of MaHKU Utrecht Graduate School of Visual Art and Design (HKU Utrecht)
PERCEPTUAL STRATEGIES
In the late 1980s, critics like Robert Hughes could still distinguish the domain of painting from mass culture. Hughes argues, "Painting is exactly what mass visual media are not: a way of specific engagement, not of general seduction." Such views came to an abrupt end during the 1990s. Suddenly it seemed that painting could easily assimilate any other medium. The history preceding this development is told aptly by Peter Weibel in *Pittura Immedia*. In Weibel's view, painting up until the 1970s was categorized by the assumption "that there is a direct relationship between paint/color and the canvas, with artistic subjectivity as the only mediator."(1) However, during the 1980s, painting leapt back into the illusion of immediacy due to the trans-avantgarde movement and the non-complex iconography of "wild painting.” Weibel maintains that the 1990s facilitated an ideal synthesis of painting strategies linking to earlier achievements and scrutinizing the horizon of representation as such through critical experimentation. The new generation of painters not only reacts to the images produced by the media and the history of art, but they also anticipate the consequences of these images for art. Peter Weibel describes this form of image production as *immediation*, i.e., the process of going through different media before painting, and rethinking the question of the visual.
It is through a similar reflexive strategy, i.e., thinking through the position of the image as such by way of a painterly detour, that Eunhyung Kim’s vocabulary of images is defined. It is a language focused on the logic of visibility, through a dialectic tension of mediacy and immediacy. This procedure gives rise to a post-semiotic rediscovery of the image as a complex coalescence of visuality, discourse, body, and figurality, underscoring the dynamics of Eunhyung Kim’s *immediation*: a strategy ultimately removing the artistic image permanently from the one-dimensional dictatorship of the accelerated iconography of mass culture. Thus, a novel, differential iconography emerges, able to bring an unprecedented experience within the reach of apprehension.
How could strategies of dynamic imagination and perception-based knowledge be further systematized, analyzed, and understood in a 21st-century theoretical sense? For that, we need a specific topical terminology filled with lines, maps, cartographies, and geographies. Indeed, we need the French philosopher Gilles Deleuze to guide us further in those explorations.
In *Negotiations*, Deleuze claims, "What we call a `map’ or sometimes a `diagram’ is a set of various interacting lines (thus the lines in a hand are a map). There are of course many different kinds of lines, both in art and in a society or a person. Some lines represent something; others are abstract. Some lines have various segments; others do not. Some weave through a space; others go in a certain direction. Some lines, no matter whether or not they are abstract, trace an outline; others do not. The most beautiful ones do. We think lines are the basic components of things and events. So everything has its geography, its cartography, its diagram. There are various spaces correlated with different lines, and vice versa. Different sorts of lines involve different configurations of space and volume."(2)
The Deleuzian multiline or multiplicity-based network produces a specific mode of analysis "based on two components: a two-line streaming mode of analysis based on the thought of philosopher Henri Bergson, and the form of motion produced by quantum mechanics and its emission of particles and exchange of packets of energy producing the concept of nonlocalizability." Deleuze's multiplicity mode of analysis creates a fascinating visualization of a figure of thought where a correlating, open system of two streams of interacting concepts are all based on the interplay of lines, dimensions, strata, planes, spaces, and plateaus.
Thus, the streaming two-line mode of analysis, and its related multiplicity mode of analysis, yields two continuously interacting domains, producing a stream of novel concepts and insights. Eunhyung Kim, as an artistic researcher, seems to deploy this methodology of a streaming two-line mode of analysis, dealing with the two interacting lines or domains of the activation of imagination and production of perceptual strategies.
The perspective of the first line, the activation of imagination, is clearly underscored by the modernist definition that the artist has the capacity to observe what others do not notice. After all, through mere visual means, the artist succeeds in making visible what ordinary vision fails to perceive. Because of that, the everyday categories of perception become dislocated in a flash. Eunhyung Kim compels us to see—for one moment—the world in a different way; according to different norms, according to different habits; images ultimately showing forms of reality are replaced by images as novel visibilities. With that, Kim’s art determines a variety of polymorphic ways for flexible observation. Her artistic images provide an open view while liberating the spectator from a frozen perspective.
The creation of a second line, a flashing line of flight constituting a zone of reflexivity,(3) seems to be of immense, topical interest in today's visual art. Therefore, in artistic research, a self-reflexive movement continuously questions shifting situations while determining shifting positions in a constant process of interacting, intermingling, and traversing of its lines and domains of analysis. As a consequence, art as research continually produces novel connections, accelerations, and mutations in temporary, flexible, and open systems.
In that context, Eunhyung Kim’s body of work is an intellectual exercise for achieving transformation in spaces of knowledge. In her *Colors of Memory*, Eunhyung Kim creates models criticizing the suggestion of perfect communication as imposed on us by traditional and singular forms of visual art. She invents modes of perception demonstrating the shortcomings and white spots on the map of prevailing information while providing strategies for escaping dominant perceptual regimes. In fact, Eunhyung Kim’s serial works invent and create Deleuzian multi-line networks of information, able to produce even more dynamic notions of mapping (or counter-mapping) while communicating the experience of an art scene and a world of visual art in the process of becoming fluid, transparent, and open.
Henk Slager, Amsterdam
Notes:
1. Peter Weibel, *Pittura/Immedia*, Graz/Klagenfurt, 1995, p. 38.
2. Gilles Deleuze, *Negotiations*, New York, 1995, p. 33.
3. Cf.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London, 1988, p. 293.
지각적 전략
1980년대 후반까지 로버트 휴즈와 같은 비평가들은 여전히 회화를 대중문화와 명확히 구분하려 했다. 휴즈는 "회화는 대중 시각 매체와는 달리 구체적인 관여의 방식이지, 일반적인 유혹의 방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1990년대에 급격히 사라졌다. 갑자기 회화는 다른 매체를 쉽게 흡수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발전의 배경은 피터 바이벨의 『Pittura Immedia』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바이벨의 관점에서 1970년대까지의 회화는 "물감/색과 캔버스 사이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예술적 주관성이 유일한 매개자"라는 가정에 의해 분류되었다.(1) 그러나 1980년대 동안, 회화는 트랜스 아방가르드 운동과 "와일드 페인팅"의 비복잡한 도상학으로 인해 즉시성의 환상으로 되돌아갔다. 바이벨은 1990년대가 이전 성과와 연결된 회화 전략의 이상적인 종합을 촉진하고, 비판적 실험을 통해 표현의 지평을 면밀히 검토했다고 주장한다. 새로운 세대의 화가들은 미디어와 미술사의 이미지에 반응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이미지가 예술에 미칠 영향을 예측하기도 한다. 바이벨은 이러한 형태의 이미지 제작을 "즉시화(immediation)"로 설명하며, 이는 회화 전에 다양한 매체를 거치고 시각의 문제를 재고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와 유사한 반성적 전략, 즉 회화적 우회를 통해 이미지의 위치를 사고하는 방식으로 김은형의 이미지 어휘가 정의된다. 이는 매개성과 즉시성의 변증법적 긴장을 통해 가시성의 논리에 초점을 맞춘 언어이다. 이 절차는 시각성, 담론, 신체, 형태성의 복합적인 융합으로서 이미지를 후기 기호학적으로 재발견하게 하며, 김은형의 즉시화의 역동성을 강조한다. 이 전략은 예술적 이미지를 대중문화의 가속화된 도상학의 일차원적 독재에서 영구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새로운 차별적 도상학을 탄생시켜, 전례 없는 경험을 파악할 수 있게 한다.
21세기 이론적 관점에서 역동적 상상력과 지각 기반 지식의 전략을 어떻게 더 체계화하고 분석하며 이해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 우리는 선, 지도, 지도학 및 지리학으로 가득 찬 특정 주제 용어가 필요하다. 사실, 우리는 이러한 탐색을 더 안내할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필요하다.
들뢰즈는 『협상(Negotiations)』에서 “우리가 ‘지도’ 또는 때로는 ‘도표’라고 부르는 것은 다양한 선들이 상호작용하는 집합이다(따라서 손의 선들은 지도이다). 물론 예술, 사회, 사람에게는 다양한 종류의 선들이 있다. 어떤 선들은 무언가를 나타내고, 다른 선들은 추상적이다. 어떤 선들은 여러 구획을 가지고 있고, 다른 선들은 그렇지 않다. 어떤 선들은 공간을 통과하고, 다른 선들은 특정 방향으로 간다. 어떤 선들은 추상적이든 아니든 윤곽을 그리지만, 다른 선들은 그렇지 않다. 가장 아름다운 선들은 윤곽을 그린다. 우리는 선들이 사물과 사건의 기본 구성 요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것에는 그 고유의 지리학, 지도학, 도표가 있다. 다양한 선들은 서로 다른 공간들과 연관되어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서로 다른 종류의 선들은 공간과 부피의 다른 구성을 포함한다”고 주장한다.(2)
들뢰즈의 다중선 또는 복수성 기반 네트워크는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Henri Bergson)의 사상에 기반한 두 가지 분석 모드를 따른다. 첫 번째는 두 개의 선 흐름 분석 모드이며, 두 번째는 양자 역학의 입자 방출 및 에너지 패킷 교환이 생성하는 비국지성(nonlocalizability) 개념을 기반으로 하는 운동 형태이다. 들뢰즈의 복수성 분석 모드는 선, 차원, 지층, 평면, 공간 및 고원 등의 상호작용하는 개념들의 흐름으로 구성된 상호 연관적이고 개방된 시스템의 사고 도형을 시각화하는 흥미로운 방식을 창출한다.
따라서, 이러한 두 선 흐름 분석 모드와 관련된 복수성 분석 모드는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두 개의 영역을 생성하여 새로운 개념과 통찰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김은형은 예술 연구자로서 상상력의 활성화와 지각 전략 생산의 두 가지 상호작용하는 선 또는 영역을 다루기 위해 이러한 두 선 흐름 분석 방법론을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선인 상상력의 활성화는 예술가가 다른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는 모더니스트 정의에 의해 명확히 강조된다. 결국 단순한 시각적 수단을 통해 예술가는 일반적인 시각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을 가시화하는 데 성공한다. 그로 인해 일상적인 지각 범주는 순간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김은형은 우리에게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다른 규범에 따라, 다른 습관에 따라 볼 수 있도록 강요한다. 궁극적으로 현실의 형태를 보여주는 이미지는 새로운 가시성으로 대체된다. 이를 통해 작가의 예술은 유연한 관찰을 위한 다양한 다형적 방식을 결정한다. 그녀의 예술적 이미지는 동결된 관점에서 해방된 열린 시야를 제공한다.
두 번째 선인 반사성의 영역을 구성하는 번뜩이는 탈주의 선을 창조하는 것은(3), 오늘날 시각 예술에서 매우 중요한 관심사인 것 같다. 따라서 예술 연구에서 자기 반성적 운동은 끊임없이 상황의 변화를 질문하면서 분석의 선과 영역을 상호작용하고, 뒤섞고, 가로지르는 과정에서 위치의 변화를 결정한다. 결과적으로, 연구로서의 예술은 임시적이고 유연하며 개방된 시스템에서 새로운 연결, 가속 및 변형을 지속적으로 생성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은형의 작품은 지식 공간에서 변형을 이루기 위한 지적 운동이다. 그녀의 『기억의 색』에서 김은형은 전통적이고 단일한 형태의 시각 예술이 우리에게 부과하는 완벽한 소통의 제안을 비판하는 모델을 창조한다. 그녀는 지배적인 지각 체제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제공하면서, 지배적인 정보의 지도에서 결함과 공백을 보여주는 지각 방식을 고안한다. 사실, 김은형의 연작은 더욱 역동적인 매핑(또는 반대 매핑)의 개념을 생성할 수 있는 들뢰즈적 다중선 정보 네트워크를 고안하고 창조하며, 유동적이고 투명하며 개방된 상태로 변화하는 예술 장면과 시각 예술 세계의 경험을 전달한다.
헹크 슬라거, 암스테르담
주석:
1. Peter Weibel, Pittura/Immedia, Graz/Klagenfurt, 1995, p. 38.
2. Gilles Deleuze, Negotiations, New York, 1995, p. 33.
3. Cf. Gilles Deleuze and Félix Guattari, A Thousand Plateaus, London, 1988, p. 293.
Kim Bokgi
Director of Art In Culture, Professor of Kyonggi University
Waves of Time
1.
KIM EUN HYUNG has been exhibiting her work in Europe since graduating from Utrecht School of the Arts in the Netherlands in 2009. She has been working on project-based works in animation, documentary, and performance.1) In a series of works such as Space Invader, Bystander, This Is My Sister, Post It, Street, A Wash Place, and Meeting North Koreans in the Netherlands, she has consistently addressed prominent social themes. Notably, her work aligns with the broader movement of “Political Correctness,” as it engages with significant discourses surrounding race, ethnicity, community, democracy, and social injustice.
However, it is important to note that her subject matter arises from the concerns of an ordinary individual—namely, herself. The young artist’s perspective on her own position as a minority in Dutch society, along with her view of Korea’s reality from an outsider’s perspective, is closely intertwined with her work. Kim’s sincere questioning of the contradictions within the social system does not come across as left-wing propaganda or a political statement intended to provoke social criticism. Rather, it can be seen as the counterattack of the weak against the illusions of the powerful—a quiet yet purposeful voice striving for personal political correctness. It represents the intersection of her perception with the external world, the legitimate expression of art in response to reality, and the affirmation of her existence and purpose as an artist navigating this journey.
2.
KIM EUN HYUNG held her first solo exhibition in Korea on the theme of The Color of Memory, which displayed a collection of paintings. In contrast to her earlier works, she embraced one of the most traditional art forms, displaying her pieces in the white cube gallery space. Her works in this exhibition can be categorized into two types: black-and-white drawings on white canvas and abstract paintings.
First, it is important to highlight the significance of her drawings. In essence, drawing forms a core aspect of Kim’s artistic identity. Here, “drawing” is not used as a verb but as a noun within the context of contemporary art. For Kim, drawing, or the “self-sustaining line,” represents a continuous process of contemplation, with its trajectory serving as a conceptual blueprint. Even in her earlier video and performance works, writing and drawing were integral components of her creative process. As she explains, “I determine what I want to explore, gather materials, consult books, interview subjects, and create works grounded in writing and drawing. The final product (medium) is the next step in the process.”
In this exhibition, unlike in her previous work, her writing and drawing are not part of the “process” but serve as the “final result” of her artwork. The compositions consist of a few poetic phrases and self-sustaining lines. She has chosen thematic words such as breath, strangeness, repetition, intentionally constructed emotions, oblivion, nostalgia, air, memory of lines, habits, gaps, loss, and doubt, among others. She has articulated the contemplative dynamics surrounding these themes and translated this language into visual form through her drawings. It can be described as a poem of drawings—a fusion of poetry and visual art where “poetry is a picture that speaks, and a picture is a silent poem.” But why drawing? Because drawing captures the contemplative movement in its most “raw” and authentic form. Throughout history, the line has been a tool for inward exploration, representing another means of accessing the invisible inner world. Thus, drawing becomes a pathway to the most personal yet universal human experience.2)
The abstract paintings, which form the centerpiece of the exhibition, serve as a conceptual complement to the writing and drawing. Each drawing is transformed and enlarged into a painting, with the basic structure of the original drawing preserved. While the poetic language from the drawings is absent in the paintings, it is replaced by sculptural elements such as size, framing, color, composition, and construction. In this way, each painting becomes its own form of poetry.
At first glance, Kim’s abstract paintings evoke the constructivist style of early 20th-century Europe. Constructivism sought to create a harmonious and balanced whole through geometric, orderly forms and clear, flat colors, aiming for a return to order and typically adopting a geometric abstraction. While geometric clarity also appears in her abstract compositions, they are dominated by much freer, wave-like lines. These undulating lines are born from the self-sustaining lines of her drawings—a pulsating wave of contemplation. The countless overlaps of these lines evoke images of natural growth processes, landscapes, or primitive life forms—perhaps the landscapes of memory that Kim explores. In this sense, her work embodies the qualities of organic abstraction. Whereas geometric abstraction is defined by a closed structure governed by cold logic, organic abstraction is driven by a more passionate and open emotional structure. She weaves a dense and rich cellular fabric of emotion onto the canvas.
Her abstract work can be seen as another form of drawing—a drawing that multiplies and expands continuously. The canvas becomes a chaotic field where the “linear” rhythm resonates within defined boundaries. The original drawing serves as an open vessel for the spirit, constantly evolving and growing. Drawing on Julia Kristeva’s ideas, Midori Matsui describes this quality as the “structure of the minor.” This structure represents a form of expression that enables the individual to mentally reorganize by embracing what is repressed, similar to a living organism that sustains itself by continually recreating its subjectivity in relation to other objects.3) This “structure of the minor,” or the ongoing, evolving form of drawing, is a defining feature of KIM EUN HYUNG’s paintings.
3.
The Color of Memory. It is the title of this exhibition project, and there is nothing amiss in referring to the painting exhibition as a project. Like any creative endeavor, she follows a process that includes conceptualizing the work, researching reference materials, and engaging in writing and drawing. While traveling between Amsterdam and Korea, she encounters memories from various times and places. Through this, she delves into the concept of time—interwoven like a thread that crosses between self and other, encompassing memory and forgetfulness, consciousness and unconsciousness, truth, and distortion.
Her painting takes Gilles Deleuze’s theory of time as its central concept. What is the essence of the time theory? The past exists within the present, which constantly disappears moment by moment, while the present is like a point—a contraction of the entire coexisting past in each fleeting instant. Deleuze’s concept of time is neither continuous, sequential, orderly, nor deterministically flowing. In other words, time is, in the end, another name for memory. And what is memory? “Memory is always an active phenomenon in the present and a binding force experienced in the eternal now.” (Aleida Assmann). As such, memory is the past continually reintegrated with our present perception or reimagined into the future through the power of imagination.
The Color of Memory. Her project is structured around subthemes such as breath, strangeness, repetition, intentionally constructed emotions, oblivion, nostalgia, air, linear memories, habits, gaps, loss, and doubt, each serving as the title for an individual piece. These concepts are intangible and elusive, making them challenging to define. Unlike her previous works that focused on specific social issues with clear conclusions, her painting project explores themes that are both universal and deeply personal. It presents an intimate subject that resists being untangled through a singular narrative framework. Such a subject is naturally well-suited to painting, particularly in abstract forms, as painting offers a unique and intimate language of expression. As Baudelaire noted, painting is an art of profound inference. Each brushstroke on the canvas reflects her individuality, resulting in a single piece that encompasses numerous judgments, choices, and layers of unspoken meaning.
Viewing and critiquing a painting involves immersing oneself in an artist’s creative process. After experiencing her abstract painting, the audience may then read the poem that accompanies the piece, or observe a drawing paired with another painting, accompanied by its own poem. Abstract painting, by utilizing a language that transcends representational imagery, can be seen as a new concept of painting, moving beyond traditional formalist theories of composition. Her creative process varies depending on the concept behind each subject, allowing viewers to experience different perceptions of time and space. In this solo exhibition, the stylistic range of her works is striking, creating the impression that they could have been created by the same artist at different periods, or even by multiple artists. Her works are discontinuous, disoriented, and non-linear, flowing like the “structure of the minor” rather than following a coherent or unified narrative.
Her abstraction presents a challenge to contemporary painting, avoiding the dead ends that modernist painting has reached, such as self-referentiality, homogeneity, lack of content, and elitism. Despite it being her first solo exhibition, I am already looking forward to her next concept: variations in representation that visually capture polyphonic narratives!
1) https://www.kimeunhyung.com/
2) Akira Tatehata, The Delay of Line, The Present of Drawing, The Unfinished Past—Painting, Goryu Shoin, 2000.
3) Midori Matsui, The Vessel of an Open Mind—An Essay on Anti-Painterly Drawing, Bijutsu Techo (Art Notebook), April 2000.
시간의 파동
김복기 (아트인컬쳐 대표, 경기대 교수)
1.
김은형은 2009년 네덜란드의 위트레이트 예술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유럽을 무대로 작품 활동을 펼쳐 왔다. 그동안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퍼포먼스 등 프로젝트 성격의 작품에 몰두했다.1) <공간 침략자들> <방관자> <이 사람은 내 동생> <포스트잇> <거리> <빨래터> <네덜란드에서 만난 북한 사람> 등 일련의 작품에서 작가는 선명한 사회적 주제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인종, 민족, 공동체, 민주주의, 사회 부조리 등의 거대 담론을 터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보면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ion)’ 의 지향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김은형의 경우, 그 주제가 평범한 개인(나)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네덜란드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환경, 나라 밖에서 바라본 또 다른 한국의 현실 인식 등이 이 젊은 아티스트의 작품 시각과 무관 하지 않으리라 짐작 된다. 사회 제도의 여러 모순에 던지는 김은형의 진지한 질문은, 그러나 좌익적 프로파간다도 물론 아니거니와 사회적 고발 로의 확산을 노리는 정치적 발언의 수준도 아닌 것 같다. 소박하게 말해서, 강자의 허구에 대한 약자의 역습, 그 작은 외침으로써 개인의 정치적 올바름을 지향하고 실현하는 일이 아닐까. 나의 인식과 외부 세계와의 만남, 이 현실에 대응하는 미술로의 정당한 발언, 바로 이 길목에서 아티스트로서 자신의 존재와 삶의 의의를 확인하는 일 말이다.
2.
김은형이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기억의 색’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회화 작품으로 전시를 꾸몄다. 이전 작품과 달리 화이트 큐브의 갤러리 공간에서 가장 전통적인 미술 장르를 선보였다. 이번 전시 작품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흰 캔버스의 흑백 드로잉 소품이고, 또 하나는 추상 양식의 회화 작품이다.
먼저 드로잉을 주목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드로잉 이야말로 김은형 예술의 강력한 자기 정체성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드로잉은 ‘동사’가 아니라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차지하는 ’명사’로서의 위상이다. 김은형에게 드로잉, 즉 ’자립하는 선‘은 언제나 사색의 역학이며, 그 궤적은 개념에 설계도라 불러야 할 정도로 중요한 몫을 차지 한다. 이전에 영상이나 퍼포먼스 작품에서도 글쓰기와 드로잉은 빼놓을 수 없는 창작에 프로세스였다. 작가는 말한다. ”응시의 대상을 정하고 자료를 수집 하고 그에 따른 서적을 참고 하고 대상에 대한 인터뷰 등을 거쳐 글쓰기와 드로잉을 기반으로 작품을 제작 한다. 그에 따른 결과물(매체)은 그 다음 선택이다.“
이번 전시회 글쓰기와 드로잉은 이전과 달리 ’프로세스’가 아니라 그 자체가 작품의 ’결과’다. 화면은 시와 같은 몇 구절의 문장과 자립하는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숨, 낯선, 반복, 연출된 감정, 망각과 향수, 공기, 선의 기억, 습관, 틈, 상실, 의심 등의 주제어를 내걸었다. 그리고 이 주제를 감싸는 사색의 역학을 언어화하고, 이 언어를 드로잉으로 가시화했다. 쉽게 말하면 시의 그림이요, 그림의 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시는 말하는 그림, 그림은 침묵하는 시’라고 표현 하면 어떨까. 그런데, 왜 하필 드로잉일까. 드로잉야말로 사색 운동을 가장 ’날 것’으로 반영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선이란 어느 시대건 내면으로의 탐구 형식이었다. 선은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 다가서기 위해 요청 된 또 하나의 타자다. 그래서 드로잉은 가장 사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세계로 이끌어 간다.2)
이번 전시의 메인 작품인 추상 회화는 위의 글쓰기, 드로잉과 개념적으로 완벽한 쌍을 이루고 있다. 각 쌍을 놓고 보면, 한 점 한 점의 드로잉 한 점 한 점의 회화로 번안, 확대되었다. 작품마다 드로잉의 기본 골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회화에서 언어(시)는 사라졌지만, 그 언어를 화면의 크기, 프레임, 색채, 구성, 구축 등에 조형 요소로 대체한다. 회화는 한 편의 시처럼.
얼핏 보면, 김은형의 추상 회화는 20 세기 초반 유럽의 구성주의 양식을 떠올린다. 구성주의는 기하학적인 정연한 형태와 평면적이고 명쾌한 색채로 조화와 균형을 꾀하는 전체상을 조성한다. 질서로의 호출 혹은 회귀를 지향해 대체로 기하학적 추상양식을 취한다 김은형의 추상 화면에도 기학적인 명확한 형태가 등장하지만, 그 이상으로 자유로운 파상선이 지배하고 있다. 이 파상선은 드로잉의 자립하는 선에서 탄생한 것이다. 꿈틀거리는 사색의 파동이다. 자립하는 선의 무수한 겹침은 자연의 성장 과정이나 풍경 혹은 원시적인 생명의 형태를 환기 한다. 작가가 탐구 한 기억의 풍경이리라. 이 점에서 김은형의 작품은 유기적인 추상의 성격을 갖추고 있다. 기하학적 추상이 차가운 이성이 지배하는 딛힌 구조라면, 유기적인 추상은 좀 더 뜨거운 감정이 견인 하는 열린 구조다. 그녀는 화면에 조밀하고 풍성한 감성의 세포조직을 짜낸다.
김은형의 추상 작품은 드로잉의 다른 이름이다. 증식에 증식을 거듭 하는 드로잉. 화면은 경계가 명확한 ‘선적(linear)’ 율동이 메아리치는 카오스의 장이다. 원래 드로잉이란 끊임없이 유동하고 성장중인, 열린 정신의 그릇이다. 마츠이 미도리는 이러한 드로잉의 특성을 줄리아 크리스테바(Julia Kristeva)를 끌어들여 ’미성년의 구조’라 부른다. 미성년의 구조는 다른 사물의 관계에 따라 언제나 자신의 주체성을 다시 만들면서 목숨을 유지하는 종의 생물처럼, 억압 된 것에 자신을 열면서 개인으로서의 정신적 재편성을 성취해 내는 표상의 형식이다.3) 미성년의 구조, 요컨데 드로잉과 같은 현재 진행형의 조형이야말로 김은형 회화의 특성이다.
3.
기억의 색, 이번 전시 프로젝트 제목이다. 회화 전시를 두고 프로젝트라 부르는 일이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여느 창작 때처럼 김은형은 작품 개념을 설정하고, 참고 서적을 탐구 하고, 글쓰기와 드로잉의 단계를 거쳤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에서 한국을 오가면서 작가는 서로 다른 시공간에 기억과 마주한다. 기억과 망각, 의식과 무의식, 사실과 왜곡 둘러싸고 나와 타자를 가로지르는 실타래처럼 얽히고 얽힌 시간 개념을 탐구 한다.
이번 회화 작품은 질 들뢰즈의 시간론을 핵심 개념으로 삼았다. 그 시간론의 요체가 무엇인가. 과거는 순간순간 사라지는 현재에 존속 하며, 현재는 그렇게 공존하는 과거 전체의 수축인 매 순간의 점과 같은 것. 들뢰즈의 시간은 결코 연속적 순차적 규칙적 결정적 흐름이 아니다. 다른 말로 표현 해 보자. 시간이란 결국 기억의 다른 이름이다. 기억이란 무엇인가. ”기억이란 항상 현재 활성화 되고 있는 현상이며 영원한 현재에서 체험한 구속력이다.“(알다이스 아스만). 그렇다. 기억은 과거가 현재 지각과 끊임없이 새롭게 통합되거나 미래에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대체 된다.
기억의 색. 김은형의 프로젝트를 구성하는 소주제가 위에서 언급한 숨, 낯선, 반복, 연출된 감정, 망각과 향수, 공기, 선의 기억, 습관 ,틈, 상실, 의심이다. 각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다. 자세히 살펴 보면 모두가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의 주제다. 이전의 영상이나 퍼포먼스가 결론을 명확하게 드러내는 특정한 사회적 주제였다면, 회화 프로젝트는 보편적이면서도 개개인마다 차이를 보여주는 주제다. 한마디로 하나의 통일 된 이야기 구조로는 풀어내기 어려운 내밀한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주제는 마땅히 회화, 그것도 추상 형식에 아주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회화 만큼 내밀한 조형 언어를 가진 예술 장르가 달리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보들레르가 설파 했듯이, 회화란 깊은 추론(追論)의 예술이다. 캔버스에 물감을 칠 하는 행위 하나하나에는 아티스트에 고유 성이 담겨 있다. 결과는 하나의 화면으로 드러나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판단이나 결단,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정보가 내장 되어 있는 것이다.
회화를 감상하고 비평 하는 일은 결국 화가의 창작 프로세스를 추체험 하는 일이다. 김은형의 추상 회화를 보고 난 뒤, 제목에 부친 한편의 시를 읽어 보라. 아니면 한편에 시에 곁들인 드로잉과 한 쌍을 이루는 회화 작품을 감상 해 보라. 추상 회화의 한 장면의 이미지를 뛰어넘어 다른 언어를 동원 한다면, 형식주의 조형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개념의 회화라 불러도 좋으리라. 그녀의 회화는 주제의 개념에 따라 다른 창작의 생성 과정을 가질 수 있고, 감상 또한 개념에 따라 다른 시공간을 추체험 할 수 있다. 이번 개인전에서도 작품에 양식 편차가 대단히 크다. 마치 같은 작가가 다른 시간대에 그린 작품 이거나 심지어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은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관성이나 통일성 보다는 ’미성년의 구조’처럼 유동 하는 불연속, 탈방향, 비선형의 양식이다.
김은형의 추상은 새로운 회화로의 도전이다. 이 도전은 모더니즘 회화가 자기 언급성의 폐쇄성, 동어반복, 부제, 엘리트주의 등으로 다다르고 말았던 막다른 골목을 가뿐히 비켜 간다. 첫 회화 개인전임에도 벌써 다음 개념이 기대된다. 다성적인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표상의 베레리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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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테하타 아키라(建畠晢), <선의 지연, 드로잉의 현재>, "미완의 과거 회화,五柳書院,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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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마츠이 미도리(松井みどり), <열린 정신의 그릇-반회화적 드로잉 시론>, "미술수첩, 2000. 4.